이 글을 쓰기 전, AWS를 써보며 학습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그전에는 접근성까지 챙긴 Switch 컴포넌트를 깔끔하게 구현해 보려고 조사하며 정리 중이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하는 개발자가 흔히 그렇듯 쌓인 글감도 많았다.

시간이 흘렀다. AI의 성능은 점점 좋아졌다. 나도 개발자로서 가졌던 마음과 주관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 글들 전부는 결국 보관용 폴더에 처박혔고 내 블로그에도 몇 달간 글이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AI의 훌륭한 동작에 심란해지던 어느 날 이렇게 고민과 생각들을 정리한다. 아주 오랜만에 AI 자동완성 도구나 터미널의 코딩 어시스턴트를 끄고 생각을 온전히 담아가면서. 그러면서도 자동완성이 습관이 되어 탭 키로 손이 가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 이제는 탭 키 자동완성조차 저물어 가는 시대의 습관 같기도 하다. IDE를 켜지 않거나, 최소한 직접 탭 키를 누르기보다는 AI 도구에게 작성을 부탁하는 게 대세가 되었으니까.

시작

개발자라는 직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개발자들은 모였다 하면 AI의 발전과 개발 의욕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도 친구들과 이런 걱정을 자주 나누었다. 내 주변엔 개발에, 그리고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역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기가 생각하는 미래를 떠들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아무리 있어 보이는 말을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거기 반대되는 말을 하는 비슷하게 유명한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나만 알고 있는 듯이 떠들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왜 개발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 무엇을 믿고자 노력했는지도. 그러면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여기 정리한다. 결론이나 정답 같은 건 없겠지만, 그저 담아놓는 것 자체로 이후에 내가 돌아볼 수 있을 테다.

개발자가 된 것에 대하여

나는 내가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멋진 사람들을 따라 개발자가 되었다. 자기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눈을 빛낼 수도 있다는 걸 내게 처음 보여준 사람들이 개발자들이었기에 그랬다. 다른 분야에도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개발자가 된 다음이었다. 그래도 진로를 정할 시기에 단 한 분야에서라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후회하는 선택도 여러 번 있었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개발자들을 따라온 걸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같은 환경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순간까지 내가 다가설 수 있었던 가장 멋있는 집단에 끼고자 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게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이 바닥에 들어와서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함께하며, 내가 뭘 하는지보다 내가 어떤 열정과 파도를 타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과학을 공부할 때도 만화 이야기를 나눌 때도 데이터를 이리저리 훑어볼 때도 수학을 공부할 때도, 눈을 빛내는 이들과 함께하면 힘이 났다. 그게 무엇이든 그들과 함께하는 게 맞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흐름에 있다. 내가 함께할 수 있었던 가장 멋진 사람들이 여기 있으니까.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던 기계공학과의 복학생이 여기까지 왔다.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 되었다. 그래, 상상도 못한 무언가를 마주한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가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을 좇으며 알 수 없는 길로 가면서 살기를 바란다. 가장 멋진 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무언가가 일어나기는 일어날 거라고 믿으니까.

가지고자 하는 마음가짐

사람이 살면서 인생을 흔들 만큼 커다란 선택이라는 걸 할 때가 많지 않다. 인생을 뒤집는 선택을 많이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삶의 나머지 시간들은 큰 선택들을 쫓아가고 책임지고 그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끌어보려고 애쓰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지금 내가 했었던 큰 선택들을 돌아보면 딱히 후회는 없다.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뻔한 후회는 들지만 큰 방향에 있어서는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에 벌벌 떨고 두려워하고 있는가?

물론 AI가 발전해 나를 대체할까봐 두렵다. AI보다 내가 나은 이유가 무엇이느냐는 악랄한 성찰에 제대로 스스로의 답을 내놓지 못할까봐 무섭다. 열심히 따라가고 있고 또 잘해보려고 하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더 좋아 보였던 선택이 없었는데 어쩌겠는가? 만약 기계공학 관련 직종의 AI 대체가 개발자보다 훨씬 어려운 걸로 판명났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기계공학과를 떠난 걸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AI에 버틸 수 있는 직업을 가졌는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택한 내 삶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방향을 잡는 데 있어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따라왔고 함께 열심히 여러가지를 해보았다. 내 시야 속에서 가장 멋지고 기민하고 똑똑하고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나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순순히 파도에 쓸려야 하는 거 아닐까.

하루에 2시간씩 더 개발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였다면 나는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더 열심히 할걸 하면서 땅을 치겠지. 하지만 개발자 자체가 망해버리는 게 미래라면 후회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보았던 가장 빛나는 이들이 모인 집단의 운명이라는 게 기울어 죽는 것뿐이라면 어쩔 수 없다.

주관과 훌륭함에 대하여

내가 봤던 훌륭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이 확실히 있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가 지키고 빠져들고 싶은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주관을 얼마나 밀어붙이고 또 지켜낼 수 있는지, 그 주관을 가지고 얼마나의 시간을 견뎌 보았는지도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가 좀 들어서 컴퓨터공학과에 진입했다. 그리고 운좋게도 똑똑한 이들이 모인 학회의 울타리에 한 발 정도 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똑똑한 후배들이 신입생일 때부터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이 파이썬도 모를 때 난 이미 개발을 하고 있었으니 분명 처음에는 내가 그들보다 앞서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많은 후배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그걸 보면서 난 그들과 나 사이 대체 무엇이 달랐을까 오래도록 괴롭게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나보다 지능이 압도적일까? 나보다 머리가 조금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뭉개버릴 정도의 대단한 천재가 서강대 한 학번에만 5명씩 있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천재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흔하지도 않다. 심지어 내가 보았던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조차도 지능 자체가 압도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고민들과 함께 시간이 지나 내가 졸업할 때쯤 나는 그런 아웃풋을 내는 게 타고난 재능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재능이 영향이 없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침착함과 마음의 여유,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마음을 무던히 지켜내며 자신의 주관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꿋꿋함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나이에 연연하며 급한 마음으로 살았다. 알고리즘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전공 수업이나 대외 활동, 면접 준비 따위에도 신경을 분산시켰다. 그 시간 동안 후배들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팠다. 그러다가 각자만의 성공을 거뒀다. 주어진 환경이 달랐으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자신을 밀어붙인 이들이 이겼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주관에 몰입하며 그 몰입의 시간을 얼마나 복리로 쌓았는지가 능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검증할 수는 없지만 나는 믿는다. 생각을 절대로 꺾지 않는 고집도 문제겠지만 누가 뭐라 하더라도 빠져들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도 이룰 수 있는 게 없다.

속도를 넘는 무언가

AI 시대 이전에도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강점인 개발자들은 꽤 있었다. 경험상으로는 내가 하는 분야인 프론트엔드에 그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았던 듯 하다.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부럽기도 했고 AI 이전 시대에는 그런 속도도 하나의 능력으로 취급받았기에 그들을 닮아 보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런데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보려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개발 속도라는 능력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1년차 개발자보다는 3년차 개발자가 더 빠른 속도를 가진다. 하지만 그럼 10년차가 되면 1초에 하나씩 기능을 만들어내게 되는가? 속도라는 게 그렇게 일차함수적으로 증가할 리가 없다. 또한 연차가 늘어나고 나이가 먹을수록 사고는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속도 말고 다른 걸 쌓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래도록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2년이 조금 넘는 경력이 쌓였다. 쌓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인 대상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꾸준히 추구하면서 해나간 시간이 무언가를 준다는 걸 느낀다. 나 스스로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바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몇십 년 동안 개발업계에 종사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Golang을 만든 Rob Pike나 TypeScript 아키텍트 Anders Hejlsberg 같은 사람들. 이들은 어셈블리나 Pascal, PL/I, Fortran같은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한 언어들이 주류일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들이 흘러간 시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흘러간 시대의 언어들은 쓰이지 않는 데다가 그들보다 사고나 배움도 훨씬 빠르고 임금도 낮을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있지 않은가.

오랜 세월 개발에 몸담아오면서 쌓인 경험과 통찰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어서 아닐까. 이 속도전의 시대에 웃긴 말일지 모르지만 나는 시간을 잘 버티며 꾸준히 발전해 나감으로써 쌓이는 게 있다고 믿는다. AI 이외에도 지금까지 패러다임 전환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전환기마다 나이든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라는 게 자신들이 한물갔다는 걸 인정하고 관짝에 들어가는 것 뿐이었던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어리고 말랑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게 유일한 답인가?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잘 살아남았고 오히려 자신의 옛 경험을 아주 값지게 써먹었다. 무엇이 그걸 갈랐는지 내가 명확히 정의할 능력은 안타깝게도 없다. 하지만 어쩐지 이 길로 가면 운이 좋으면 무언가 시간에 따라 쌓이는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는 약간 든다. 믿지 않는다면 남는 것도 없다.

압축될 수 없는 것

AI 시대라고 해서 내가 두려워하는 건 사실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키는 일만 하다가 대체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은 AI 시대 이전에도 다들 하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에서조차 직장인들은 그런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내 일을 해야 한다, 직장에 의존하면 안 된다 같은 말들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결국 어떤 게 대체되기 힘든 나를 구성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나는 2년간 이 업계에 있었다. 아주 나태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처음 공부한 React를 비롯한 프론트엔드부터 약간의 백엔드 지식까지 여러 가지를 해왔다. 하지만 나보다 더 열정적인 사람은 하루 12시간씩 공부해서 1년만에 나만큼을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보다 경력이 짧지만 훨씬 잘하는 사람들을 나는 여럿 보았다. 그렇게 어떤 요구 수준을 좀더 효율적이고 압축적으로 넘어버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요즘은 AI의 시대니까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압축될 수 없는 경험과 시간도 분명히 있다. 아무리 지식과 컨텐츠와 경험들 중 많은 것이 쪼개지고 가벼워지는 시대라고 해도 말이다. 결말을 포함한 영화 20분 요약은 명작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는 것과 같지 않고 유튜브로 음원을 틀어 놓는 건 라이브 공연에서 떼창을 하는 것과 절대로 같지 않다.

좀 더 시간의 간격을 늘린다면, 5년간의 연애가 아무리 미적지근한들 미치도록 뜨거운 2년간의 연애로 대체할 수 있을까? 긴 시간 동안 누군가와 가장 깊게 함께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다. 40대 부장이 인생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그게 2배 열심히 산 20대가 깨달을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삶에서 시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개발자 혹은 직장인으로서의 능력과 그대로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른 모든 역할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건 누군가가 더 빨리 압축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무언가가 아니라 살면서 깊게 보낸 시간들이고, 인간의 어떤 장점이나 면모라도 거기에서 깎여나온다.

그게 누구에게나 가치있다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걸 마음속에서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 모든 걸 쪼개고 압축하고 스킬로 만들어서 더 좁은 곳에 밀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그것대로의 원대한 비전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걸 거리낌없어하는 이들에게는 이질감을 느낀다.

평균 달성이 쉬워진 시대에 내가

누구나 AI로 B급 정도 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딸깍을 해서 당장 B급 결과물을 쏟아내라는 이야기가 널려 있다. 사실 그 정도의 결과물도 원래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거기에 프리미엄이 남아 있을 때 어서 차지하라는 말이지. AI 코드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고 AI 그림은 어색하다지만 그 정도 코드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나.

하지만 원래는 꽤 큰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 얻어냈어야 할 것들의 비용이 싸짐에 따라 거기서 멈춰 버리고 싶은 유혹도 커졌다. 자신이 직접 쌓아올린 거라면 그게 C급, D급이더라도 그대로 버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도 가끔 AI로 컨텐츠를 만들고는 하는데 분명 그 과정은 재미있었고 결과물이 괜찮음에도 애정이나, 여기서 뭔가를 더 해봐야지 같은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결국 애정을 가지고 키워나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하는 말이긴 해도 AI가 나를 갈아버리는 도구가 아니라 내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나는 그러기 위해선 밑바닥부터 올라와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애정과 의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심지어 환경도 훨씬 좋아졌다. 나는 예제 코드를 따라 치고 지금 보기엔 쓰레기 같은 코드를 만들어내며 개발을 시작했지만 지금 개발을 배우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훌륭한 코드를 보며 학습하고 공부할 수 있다. 올라올 수 있는 속도가 훨씬 늘어났다.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걸 실행하며 빠르게 가는 데 장점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하루이틀씩만 하고 깔깔대는 용도로 쓰진 않을 거 아닌가. 나는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 그래도 돌 한 개 정도는 내 손으로 올려야 지속할 수 있더라. 당장의 실행이 전부라면 모든 걸 AI한테 시켜도 된다. 하지만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인생이라면 대체 뭘 위해 살까.

무언가를 이뤄내며 흘린 땀만큼 그걸 더 사랑하게 된다. 100kg의 짐을 실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굉장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스쿼트 100kg를 하게 되었다면 굉장히 뿌듯하지 않을까? 똑같은 무게라도 스쿼트 100kg는 내가 훨씬 더 낮은 무게부터 땀흘려 올라온 것일 테니까.

개발과 배움

계산기보다 셈을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사진보다 정교한 그림을 그려낼 수 없고 누구도 지게차보다 힘이 셀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운동을 하고 사칙연산을 배우며 그림을 그린다. 거기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걸 생계로 삼는다. 원래부터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일이고 기계가 더 잘하지만 말이다. 계산기가 더 빠른데 왜 덧셈을 가르치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들이 생각의 도구나 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틀이 많으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고 더 정교하다면 남과 달라질 수 있다.

학계에 있는 사람을 만나보거나 그런 이들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생각이 깊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럴까? 단순히 지식이 많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식 따위는 AI 시대 이전에도 인터넷만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

그보다는 공부하며 마주한 문제 해결의 과정, 선대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용에 대한 배움이 그들의 머리에 새 길을 낸 거라고 본다. 학문이란 이전에 없던 내용들이 만들어져 쌓인 것이니 그걸 배움으로써 그 학문에서의 통찰을 머리에 담은 것이다.

각자가 깊이 탐구한 내용에서 얻은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지식의 쓸모없음을 들먹이며 비웃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역사학도라면 몇몇 역사적 사건의 연도나 전개를 알고 있겠지만 그 내용은 전부 인터넷에 나오는데 역사학이 무슨 의미냐고 그를 비웃는다면 얼마나 추할까.

개발이라고 그렇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개발 능력이라는 게 무의미한 시대라고 하지만 원래부터 단편적인 지식은 본질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프로토콜의 이름이나 DB 내부의 자료구조 이름 따위를 알고 모르고는 물론 흔한 면접 질문이었지만 그 자체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걸 자연스럽게 머리에 넣게 되었으리라는 판단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TCP/IP 프로토콜이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고 무슨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으며 그 이전에 어떤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 있었는지를 아는 건 의미가 있다. 최소한 인간 개발자로서 살 거라면.

나 스스로를 엄청 소중하다거나 귀한 사람으로 혹은 대단한 개발자로 포장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으니까. 또한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많이 흔들리고 실제로 나를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FOMO도 자주 느낀다. OpenAI 창립자 중 한 명인 안드레이 카파시조차 자신이 뒤처진 느낌이라고 하는데 내가 배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정량적인 걸로 경쟁해서 이기려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고자 노력한다. 원래부터 능력이란 게 지식과 정량의 높이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는 내가 보내는 시간과 온전한 경험과 배움을 무겁게 하려고 한다. 무엇이 나를 구성하는지나 내 행동의 원인, 내 장점의 기원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누군가 묻는다면 단편적인 지식 따위를 말할 리가 없을 테니까.

시야만큼의 세상에서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많다. 언젠가 내가 연인과 헤어졌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마음이었다. 병원 회복실 침대에서 정말로 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순간도 견뎠었다. 너무나 외로워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으로 매일을 살았던 시기도 지나왔다. 별거 아닌 일로 미친 듯이 화를 내고 남에게 상처준 적도 많았다. 정말 힘들었고 찌질했고 바보같은 짓도 했고 잊고 싶지만 그만큼 내 삶에 크게 획을 그었던 순간들.

하지만 오직 나만 이런 경험을 했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부끄러운 순간과 몇 개의 긴 흔들다리같은 시기를 지나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나름의 선택을 한다.

정답 같은 건 없다. 그저 그 선택과 시간이 남긴 자국과 상처와 각자가 치러야 했던 대가들과 그러면서 마주해야 했던 최대한의 벽과 내려가 봤던 가장 밑바닥이 한 사람을 그대로 구성하고 그게 자신의 세상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시야만큼의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꾸린다.

운이 좋아 내가 타고난 능력 치고는 높은 벽을 마주해보았고 감정의 밑바닥을 여러 번 긁어보았다. 그래서 간장 종지만한 내 그릇에 비해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를 진동하며 얻은 능력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소중하게 여기게 된 단어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친다. 미친 성능의 새로운 도구가 나왔다는 hype들이 매일 넘실대는 세상에서 자존이나 신념 같은 단어들이 적어도 나의 세상에서는 초라해지지 않도록.

난 직장인이고 컴퓨터공학 전공자로 경력도 열심히 쌓았다. 또 JavaScript를 상당히 열심히 공부했던 개발자이며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해왔다. AI를 잘 활용하며 무슨무슨 활동을 했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이다. 단순히 나의 장단점이나 머릿속에 가진 지식이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과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다. 다들 비슷한 순간들을 겪지만 거기서 택한 다른 길들이 사람을 구성하니까.

병원 침대에 여러 번 누웠었다. 그때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았지만 뭔가 정량적인 것을 잘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보다는 좀 더 나로서 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좀 더 괴로워하고 화내고 도전하고 부서지고 눈물 흘리고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잡거나 지키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 꽃구경을 덜 간 것, 하늘 한 번 덜 바라본 것 따위가 생각났다.

그러니 다음에는 그런 후회를 덜 하도록 살아야 할 뿐이다. 모든 가치는 결국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정의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나로서 성공하고 나로서 실패하기 위해 나의 세상을 지켜내야 한다. 세상이 자꾸 각자의 소중한 걸 흐릿하게 만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