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것들과 꿈에 대한 기록
시작
면접 중이다. 처음 면접을 볼 때는 잔뜩 떨었는데 벌써 4번째 회사를 찾고 있는 신분이다 보니 긴장이 훨씬 덜하다. 떨어지면 아쉽겠지만 그래 봤자 수많은 탈락 경험 중 하나일 뿐이다. 한번의 성공과 몰입의 경험이 그 모든 걸 닦아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한 일과 경력이 생겨서 그런지 이미 들어본 질문들이 나온다. 이전에 날 떨어뜨린 회사들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궁금해했었다. 그만큼 충분한 생각을 해놓았고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는 기술적인 이야기들.
그러다가 면접관이 그간의 배움에 대해 나에게 불쑥 물었다. 여러 직장을 다니셨고 스타트업의 아주 초기 멤버로도 있으셨는데 무엇을 느끼고 배우셨나요?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힌다.
열심히 일했다. 새로운 것들을 겪었다. 일이건 사람이건 많은 걸 배웠다. 어쩌면 무언가를 해냈다. 내 몇 마디 말로 그걸 전부 담을 수 있을 리가. 얄팍한 경력이라 해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3년이 넘었다. 미친듯이 성장하는 스타트업에도 1년 가까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들로 내려쳐가며 벼려낸 마음을 혀끝에 쉽게 녹여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적어도 나 스스로만큼은 내가 보낸 시간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 생각해 보니, 배운 게 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부끄러워졌다. 분명 나는 크게 변했다. 그런데 무얼 그렇게 새로 배웠지? '이전에는 미분이 뭔지 몰랐습니다. 이제 배워서 알죠'하는 식으로 화이트보드에 자신있게 써내려갈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새로운 지식이 내게 들어왔던가? 결국 면접관에게는 알맹이 없는 말만 내뱉으며 횡설수설해버렸다.
불합격했다. 내 멍청한 답변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돌아보면 그때 통찰이 가득한 한마디를 던졌다고 해서 면접관이 탄복하며 나를 합격시켜 줬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문제라고 한다면 아마 모든 게 문제였을 것이다. 멋진 말 한마디 한다고 한판뒤집기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날 떨어뜨린 곳은 내가 꽤나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불합격한 아쉬움을 달래려 좋아하는 피자를 시켰다. 상을 펴다 보니 컴퓨터의 역사나 원리와 관련된 책들이 바닥에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이제는 아무도 그런 흐름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사실 AI 어쩌고 하는 지루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원래부터 사람들은 이런 데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까먹고 있었지만 한때의 나는 그런 책들을 홀로 읽었다. 나중에 대단한 엔지니어가 되어 이러이러한 컴퓨터 지식이 나를 성공시켰다고 거들먹거리며 말할 수 있기를 꿈꿨다.
그 책들의 기억으로부터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났다. 올초 내가 재직하던 스타트업의 대표와 '올해가 끝날 때에는 서로 완전히 상상도 못한 모습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눈 기억이 났다. 그전에 재직하던 회사의 팀장에게는 '내가 5년 뒤 어디 식당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좋으니 지금의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어떤 길을 가고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가 다 가지도 않았지만 그 바람과 약속은 벌써 지켜진 듯 하다. 그런데 어쩐지 원숭이 손에 소원을 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피자의 단맛이 혀와 배를 채웠지만 씁쓸해졌다.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좀더 많은 걸 확신하던 과거의 생각들이 순서가 뒤섞여 흘러들어왔다. 그때의 생각들이 내 속에서 빛이 바래던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냐고 묻던 면접관의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선연하다. 나는 어물어물하고 있는 채다. 그래도 스스로의 시간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간의 시간을 콜라와 함께 삼켜내자 그래도 내가 지켜내고 싶어했던 것이 하나둘 떠올랐다.
물론 나는 정답을 모른다. 변하는 세상의 파도가 나를 덮쳐 없애버릴까도 무섭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고 싶은 생각 한 조각조차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생각한다. 그 어떤 대단한 이가 와서 깔깔 비웃더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들이 생겼고 부족한 필력으로나마 그걸 미래의 내게 남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인 양 적었지만 결국 이것도 남 보라고 쓰는 회고 글이다. 이런 글이란 모름지기 누구나 겪었을 법한 오르내림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좀 달랐다고 가슴을 부풀려야 한다. 그러려면 그 시간 속에서 내가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고 무엇을 붙잡았고 뭘 바라보았는지 말해야 할 테다.
그럼 이제 면접처럼 애써 당당하게. 내 이야기가 마음에 꽂히도록 되도록이면 강렬하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자.
나는 사람들을 미치도록 신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고 눈을 빛내게 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너무 좋아 미칠 것 같았다. 숫자나 성과도 좋지만 기쁨을 관측하길 바란다. 내가 그걸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던질 수 있는 사람임을 안다.
작년 어느 날 공연을 봤다. 아마 이승윤의 무대였던 거 같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뛰었다. 포포 폭죽 타임-1 몸을 부딪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과 이 순간을 1분 1초도 더 줄이거나 압축하고 싶지 않다고. 모든 걸 몇 배 빨리 몇 배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처럼 모두가 지껄이는 바보 같은 세상에서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지켜내고 싶다고.
나도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대신하고 줄여주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온전히 누리고 싶은 걸 선물하는 그런 일. 사랑을 받는다면 라면만 먹고 살아도 좋다.
나는 그게 가진 힘을 믿는다. 남들에게 진정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란 그걸 만든 사람을 넘어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원래라면 내가 닿지도 못했을 사람까지도 온전히 흔들 수 있다.
일론 머스크라도 애니를 본다면 자기보다 훨씬 돈도 빽도 없는 자들이 만든 작품 중에 골라야 한다. 머스크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감명깊게 보고는 에드워드 엘릭을 프로필에 걸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내 인생 애니지만 객관적으로 소여사가 일론보다 돈이 많거나 더 성공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만든 컨텐츠는 세계 최고 부자의 마음조차도 깊숙이 찔렀다.
내가 꿈꾸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위대하고 똑똑하고 우월한 사람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에 나도 한 손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은 닿아봤기에 나는 그게 나에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안다. 내가 참여해 만들었던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지를 올릴 때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칭찬하거나 비난을 퍼부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몇이든 내가 열심히 만들어낸 곳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내가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기반 위에서 울고 웃었다.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나는 혼자 우쭐해하며 수많은 새벽을 태웠다. 이런 즐거운 일이라면 계속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두려워하지 않기
별처럼 빛을 내는 데 성공한 사람도, 유성처럼 추락하며 어두워진 사람도 있다. 대개는 실패했고 소수만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스스로를 태우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9쪽
꿈도 좋지만 실질적인 가치관이나 시야의 차이에 대해서도 써볼까. 그동안의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타인에게 환상을 덜 품게 되었다. 다 똑같은 사람이고 누구나 뭘 하든 거기서 시작한다고 이젠 생각한다. 설령 다르더라도 당장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파운딩 엔지니어2였다. 파운딩 엔지니어는 스타트업 극초기에 합류한 엔지니어를 뜻한다. 그럼 파운딩 엔지니어의 모범적인 모습은 뭘까?
여러 글에 따르면 그들은 다재다능하고 기술적으로 반짝인다. 모호한 요구사항을 피하기는커녕 편안해하고 고객지원과 인사에도 관여한다.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다. 살인적인 기한 압박과 시장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해낸다. 이른바 완벽초인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약 10달간 AI 컨텐츠 스타트업의 2번째 멤버이자 프로덕트 엔지니어로 재직했다. 엔지니어링에도 시간을 쏟았지만 초기 멤버가 으레 그렇듯 다른 부분에도 많이 참여했다. 정의상 파운딩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겠다. 팀의 다른 이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파운딩 엔지니어로서의 난 완벽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받은 역할이었으니 그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은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 그냥 손에 잡히는 걸 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플랫폼은 언제나 불타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어디서든 물을 가져와 붓고 싶을 만큼 그곳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다 보면 부족했던 적도 틀렸던 적도 가끔은 잘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난 최선을 다했다. 내가 최고의 엔지니어는 아니겠지만 세상 모든 엔지니어 중에 그때의 프로덕트를 제일 사랑했다. 나는 고객에서 시작해 기여자가 되었고 이내 원래의 직장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합류했다. 거기에 삶을 걸었던 첫번째 엔지니어였고 재직할 때만큼은 내 인생 모두를 거기 던졌다. 돌아보면 자잘한 기술적 잘못이나 작은 게으름들은 많았다. 그러나 큰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보다 더 스스로를 쏟아부을 수 있는 방법을 여전히 모르겠다.
그만큼 이제는 좀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파운딩 엔지니어니 어디의 무엇이니 하는 이름들 뒤에 있는 것도 결국 모두 사람일 뿐이라고. 내가 꽤 촉망받는 스타트업의 일원이었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서 바보였던 것처럼.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어떤 이름에 걸맞는 충분함을 처음부터 가진 사람은 없다. 유니콘 기업을 여러 개 만든 사람이라도 성공만 하지는 않았다. 그래, 난 부족한 초기멤버에 부족한 파운딩 엔지니어였다. 그럼 누가 충분한가? 충분한 씨가 따로 있는가? 이뤄내기 전에는 아무도 충분하지 않다.
나보다 대단한 이들과 성공한 이들을 존경한다. 한때 만났던 그런 이들과 같은 위치에 서보는 것이 내 소원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보다 훨씬 앞서 있을지라도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무언가가 아님을 안다.
돈 많은 대표들도 대단한 VC들도 모두가 탐내는 PO도 시간이 늦으면 피곤해했고 평범한 취미가 있었고 나처럼 라면도 먹었다. 어쩌면 당연하지 하고 코웃음이 나올 정도의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평범한 모습들을 눈앞에서 보고 그들에게 직접 듣는 건 달랐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내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이들도 한때 내 자리에 있었다는 걸 이제 안다. 우리는 같은 인간의 트랙에 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당연한 말과 행동에 대하여
"그 말이 거짓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권마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궁색한 말이지만, 검무양은 작정한 듯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한데 왜 믿으신 겁니까?" "이공자는 행동으로 보여줬으니까. 동권문에 나와서 백권부터 흑권까지 올라왔으니까." "무극이 무공실력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격앙된 검무양에게 권마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자넨 왜 하지 않았나?" 검무양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권마가 말하는 것이 단지 무공실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행동이 따를 때, 믿음에도 힘이 실린다는 것을.
장영훈, "절대회귀", 248화 중
스타트업에서의 1년간 대체 뭘 배웠다고 해야 했을까. 이후 머리를 굴려봐도 아주 새롭고 나밖에 할 수 없고 정직하기까지 한 그런 답을 도저히 낼 수 없었다. 창업자들의 자서전도 몇 권 읽었지만 내가 바라던 명쾌함은 없었다.
결국 당연한 말들 사이에서 균형과 내 자리를 찾아나가는 시간이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말뿐인 사람이 아니려고 노력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에요. 일을 잘하려다 보면 서로 크게 충돌할 수도 있지요. 성공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져야지요.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합니다. 생산성을 높여야 해요. 지금 정답처럼 보이는 일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성과로 증명해야지요. 기술적으로 옳은 선택을 해야지요. 당장 임팩트가 있는 일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높은 것부터 해나가야지요.
모두가 알고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반대로 지시하는 말도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배려해야죠. 시도하다 보면 실패할 때도 있지요. 누구나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빠르게 가다 보면 놓치는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단기적인 지표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결정해야 하는 일들도 있어요.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은 사례 한두 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기 힘든 일반론이다.
누군가의 입장과 주장이 완전히 다 틀리기는 힘들다. 상반되는 주장 사이 어딘가에 그때그때의 진실의 길이 있을 것이다. 어디에 그게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일반론을 막연히 떠들면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동안 알았다.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운동하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현대인은 대부분 운동 부족이다. 뭐가 맞네 숫자나 데이터나 성과가 어떻네 하는 것보다 우리가 미쳐 있다는 사실과 같이 한번 뭐라도 해보자는 눈빛과 의지 그리고 고민할 시간 동안 아무 쓰레기같은 선택지라도 하나 택해서 내보는 게 결국 더 큰 결과가 되었다.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현실에서 행동하는지가 우리를 결정했다.
틀린 결정을 많이 했다. 회사에서 말씨름도 자주 했다. 감정 소모도 굉장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던 순간도 많았다.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말들이 그러면 어떡하냐고 나를 질책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때마다, 비합리의 총아인 스타트업에서 그런 걸 말하는 게 의미없다는 걸 생각한다.
좋은 말들을 지켜가며 나아간 것보다 틀림을 겪어가며 전진한 게 훨씬 컸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AI가 어쩌고 데이터가 어쩌고 하며 채찍질하는 것도 가끔 필요하지만 박수 짝짝 치고 오늘도 뭐라도 해봅시다 하며 서로를 믿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실질적으로도 훨씬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수많은 밤과 눈물로 깨달았던 그 사실조차 이렇게 글로 납작하게 눌러 표현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반론이 되는 걸 안다. 일반론을 한꺼풀 벗겨서 볼 수 있었던 게 내 작은 배움이었다. 돌아보면 다 당연한 말들과 일어날 만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아는 것과 겪어내는 게 엄청나게 달랐을 뿐이다.
나는 번듯함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 그 자체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주세요. (In the end, we are our choices. Build yourself a great story.)
제프 베조스, 2010년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생 대상 연설에서
나를 구성한 것들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여전히 모호했지만 적어도 내가 이력서에 자랑스레 써놓은 숫자나 성과나 잘한 일들은 솔직히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보통은 하지 않았을 바보같은 선택들과 외로운 새벽과 흘려보낸 시간과 감정들만 떠올랐다. 나는 내가 거쳐온 한심한 선택들이다.
가끔씩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나타나 온갖 감정을 내 머리에 양동이로 쏟아부었다. 그때마다 어릴 적 좋아하던 경제학 속 합리적 인간상 같은 건 내게서 멀리 도망가 버렸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을 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며 나는 나 자신이 되었다.
무엇을 느꼈냐고 하면 이런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는 감정이 설렘이구나. 조금이라도 일찍 보고 싶어 비효율을 감수하고 서둘러 나가 지하철 나무의자에서 다리를 까딱이며 기다리는데 그마저도 즐거운 게 사랑이구나. 그가 어떤 배경과 조건이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대도 나는 이 사람에게 빠져 어쩔 줄 몰랐을 거 같다는 콩깍지가 씌여버리는 게 미쳤다는 거구나. 점점 나이를 먹다 보면 내가 영웅이 아닌 걸 깨닫고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적다는 사실을 알아가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해내고 싶으니까 꿈이라는 거구나.
이렇게 애써 말해보았지만 그런 감정들이란 원래부터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작가와 천재를 다 끌어모아 달콤한 말로 설명한대도 안되는 것이다. 나도 많은 책을 읽으며 꿈과 사랑과 감동을 아는 척 했지만 진짜 감정은 어느새 밀려와 조용히 나를 깨부수며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 그게 사실은 이런 거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기억 속 E가 뿜어내던 담배연기에 상념이 밀려났다. 가운을 대충 걸치고 창틀에 올라간 E가 뿜던 연기 너머로 흐릿해진 밤하늘이 아롱거렸다. 그날 같이 외박을 할지 말지에 대해 실랑이하고 싸우던 참이었나. 그러다가 이별을 했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 명은 창틀에 또 한 명은 침대에 앉아 있던 어정쩡한 배치만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져 버렸다.
E는 언젠가 내게, 어떤 누나가 있어 바보같이 날 참 좋아했었지 하고 자신을 기억하라고 했다. 아니면 그렇게 기억하게 될 거라고 악에 받쳐 말했던가. 어떻게 말했든 꽤나 비슷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렇게 창틀에 앉아 있던 사람과 나눴던 시간, 그때의 공기와 감촉과 이상하게 그때만은 싫지 않았던 담배냄새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내 존재를 무겁게 흔들었다. 나를 좋아하게 혹은 싫어하게 그리고 울고 웃게 만들고는 흘러가서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시간들.
그렇게 거쳐온 수많은 순간들에서 감정이 흘러왔다. 모두가 박수칠 만한 훌륭한 일은 그 흐름 속에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마음이 흠뻑 젖고는 했다. 그렇게 찝찝하게 젖은 마음이 겨우 마르고 나면 나는 어느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엇을 배웠노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도 어떤 좋은 점이 있다면 분명히 그런 감정에 떨던 한밤중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선택과 취향과 믿음을 지키기
지금까지 써왔던 이야기들 모두 내 생각일 뿐이다. 내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고 논쟁의 여지도 많다는 걸 안다. 정답은 없으니까. 지금 이걸 쓰는 나조차도 쓰면서 내 말에 대한 반박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반박의 예시를 들어줄 수도 있다.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떡잎이 다른 사람들도 사실 있다. 사람들을 뒤흔드는 일도 꽤나 숫자로 환원되고 공식과 이론도 있다.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꿈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다. 세상은 결국 내 한심함이나 알량한 소원이 아니라 성취를 본다.
나는 그 보강을 위해 예상되는 반론들을 꺾어가며 완벽한 논리를 추구해볼 수 있다. 반론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러 다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나도 만만찮게 냉소적인 사람이지만 세상은 차가우니 꿈 따위는 단념하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에게 쏟아붓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의견의 존재와 현실의 한계쯤은 누구나 커가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꿈이고 믿음이다.
하버드 총장이 뭐라뭐라 했다는 뉴스를 봤다. 앤트로픽의 누군가가 뭔가 있어 보이는 말과 미래학 강론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권위있는 말들조차 아무것도 제대로 예측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시대다. 아무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말 같은 게 희박해졌다. 그럼 스스로의 취향과 믿음뿐이다. 무엇을 해야 하고 믿어야 하는지조차 취향이다.
2026년 필즈상 수상자 중 한 명이 백합물 매니아라고 한다. AI가 모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면 집에 돌아가 백합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가 내 앞에 와서 백합물 좋아하세요? 하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할까. 보탄3을 재밌게 봤지만 최애 장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백합이 최고의 장르라고 그가 주장하면 나는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당연하게 대답할 테다. 그는 위대하지만 내가 그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 오거나 어떤 시대가 온다고 해도, 거기 주의를 기울이겠지만 나의 다른 믿음도 말할 수 있는 게 당연하도록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포기하고, 저 사람이 더 대단하니 물러서고, 이건 대세가 아닌 거 같으니 포기하고. 그렇게 걸러내고 포기하다 보면 나는 한 조각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꿈꾸는 나날
네. 불완전해요. 모두의 인생처럼, 나의 지난 삶이 그랬고 지금 삶도 그래요. 내 기대와는 다르고 예상한 것과도 달라요.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발톱이 부러질 수도 있고 지금은 지독한 변성기를 겪고 있죠. 무지개는 언제나 무지개가 아닐 수도 있겠죠. 그래도 나는 장마가 내리면 빗속에서 춤을 출 겁니다. 그리고 변성기가 끝나면, 성장기가 마무리되고 나면, 내가 지금 부르는 노래들은 한결 아름다워질 겁니다.
이은용,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73쪽
마지막을 쓰기 전 글을 다시 쭉 읽어보았다. 뭐라 마무리를 지을지 고민이다. 여기 쓴 대로를 지향했지만 그대로만 살지는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휘둘리고 잔뜩 변하며 살아온 걸 내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건 뭔지 모르겠고 따르던 기준들도 많이 흐릿해졌다. 내가 롤모델로 삼았던 훌륭한 개발자들조차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하는 세상에서 앞으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결론은 절대로 내고 싶지 않다.
사실 오래전을 더듬으며 시작해 마지막에 창대해지는 회고를 쓰는 걸 상상했다. 스타트업 전기를 읽으며 꿈을 부풀렸던 내가 비슷한 위대함을 이루고는 가슴벅차 이야기하는 느낌의 그런 거 말이다. 내가 걸어온 길 자체가 그렇게 멋진 수미상관을 이루기를 마음속으로 그렸다. 언젠가는 제록스 연구소나 인텔이나 구글의 위대한 늙은이들처럼 되고 싶었다.
마음에 그렸던 위대함은 어디가고 서른 살이 되었다. 어릴 적 꿈에 비해 초라해졌느니 하는 뻔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엔가는 내가 꿈꿨던 것보다 더 대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낙관적으로 믿으려 하기에. 다만 내가 남은 시간을 태워 대단한 성공을 이루고 바라던 회고를 쓰는 날이 오더라도 그런 수미상관의 형식은 아닐 걸 안다. 저 멀리 보이는 빛 하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그런 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뭘 말해야 할까 생각하며 계속 돌아본다. 아무리 돌아봐도 멋지게 이룬 건 없고 나만의 믿음뿐이다. 코드를 짜지 않더라도 개발자로서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감정이 가진 힘을 믿는다.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탐닉하고 즐거워하고 어떤 것에 마음이 울리는 감동을 느끼는지 궁금해한다. 내 손으로도 그걸 재현하고 싶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마술같은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는 꿈을 꾼다.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소중히 여겨지는 자원들이 있다. 시간이라든지 목숨이라든지 청춘, 미래 같은. 그걸로 뭘 선택하고 어디에 투자했는지가 사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벌벌 떨면서도 내가 사랑하고 믿는 걸 위해 그 소중한 것들을 내던져보며 살았다. 최근 1년간을 돌아보면 그 꿈을 가지고 달려온 것 이외에 말할 게 없다. 이력서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걸 배우고 잃어야 할 걸 잃었다.
솔직히 잘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자주 밀려온다. 지금껏 자부심에 가득 찬 척 말했지만 사실 열정뿐 아니라 걱정으로도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럴 때면 과거의 내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지를 생각해본다.
몇 년 전 병원에서 나오던 날을 기억하면 모든 것에 감사했던 거 같다. 흰죽이 아니라 설렁탕을 먹을 때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릴 뻔 했고 반찬 하나하나에 감사했다. 낡은 정신과 미래를 위한 현재의 유보와 목숨과 알량한 성취 같은 것들은 병원 수술대에 놔두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내가 나로서 사는 것에 비하면 코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때의 내게 지금의 나, 미래의 내가 뭔가를 전한다면 돈을 좀 벌게 되었거나 무슨 성과를 냈다는 얄팍한 소식을 전하고 싶어할까. 지금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모르는 무엇까지 포함해 수많은 걸 포기했더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나의 꿈에서는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10시간씩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걸 생각했다고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얼만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가슴펴고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찍어본 저점에 비해서는 어떤 순간이 오든 견딜 만하다. 한때 무한히 감사했던 밥 정도는 먹고살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믿는다. 그럼 이제 멋진 말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고, 그저 앞으로도 내가 믿음을 지키고 꿈을 꾸기를.
Footnotes
-
이승윤, '폭죽타임' ↩
-
https://nephtyws.github.io/story/what-is-a-founding-engineer/ ↩
-
만화 '카미이나 보탄, 취한 모습은 백합의 꽃' ↩